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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성 가야산(加倻山)677.6m. 산행기

아름다운산 2010. 5. 12. 12:36

*.가야산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금북정맥의 끝 자락에 솟아있으며, 서해안 5대 명산( 마니산,가야산,오서산,불갑산,부안의상봉)중에서도 두번째로 높은산이다. 옛날 중국에서 한국으로 항해할 때 제일 좋은 목표였던 주봉에 지금은 TV중계소가 설치되어 있다.

 

산행지 : 홍성 가야산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행일시 : 2010.05.08. 09:10 ~15:29 (6시간) 나물채취하느라 산행시간이길음

산행코스 : 주차장 ~ 남연군묘갈림길 ~옥양봉 ~석문봉 ~가야산 ~헬기장~남연군묘~주차장( 11Km)

산행자 : 아름다운산.산유화.

            아침기상하여 조식하고 준비해논 배낭을 챙겨 주차장에 애마로네비로 목적지를치니 109Km를 알려주네요.

 고속도로로진입 (기흥IC )하니 주차장이네요.

이시간부터 차가정체되면 하루종일 이럴텐데 답답한마음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동탄~봉담고속도로로 바꾸어탄다.

여기는 한가하네요.조금달려가니 다시 서평택~오산고속도로로 바꾸어타라네요.

비싼고속도로비용지불하고 2Km정도지나니 서평택~안성간고속도로로 다시바꾸어타고 달리니 서해안고속도로로 다시 갈아타라하네요.

여기는 경부보다는 속도가나내요! 서해대교지나 당진IC지나 조금지나니 당진~대전

고속도로로 다시갈아타고 고덕IC로 빠져나와 40번국도로 덕산읍내를 거쳐 옥계저수지를돌아 진행하니 가야산도립공원주차장에(상가리)다달은다.

주차장에는 몇대의차량이 주차되어있고 어느산객이 도로를따라올라가고있다.

우리도 산행준비를하고 도로따라올라간다.5분여올라가니 상가리 경로당과상가와

버스종점이있다.

좀더올라가니 도로공사가 한창이다.가야산 순환도로를 개설및확장공사를 추진하고있다.

 

좌측도로를따라 진행하니 작은언덕에 기념비가있고 도로따라 진행하니

남연군묘이정표갈림길(09:08) 오른쪽은 석문봉,옥양봉으로.왼쪽은 가야산,원효봉으로 하산길은 이길로 내려오게된다.

진행은 옥양봉쪽으로발길를 옮긴다.

산유화는 쑥뜯느라 정신줄놓고 도로옆은 조그만 과수원(사과)을따라 진행하니 별장같은곳에서 간이음식점앞에는 차량들이주차되어있고 우리는 도로따라올라간다.

조금올라가니 농가가나오고 간이음식을판매하고 이젠비포장도로을따라가니

등산로개설기념비가 설치되어있고 (심신단련과 화합의장을 마련하기위하여 가야산 등산로를 개설한다.1994.9.10. 예산군수)

이정목이 ←석문봉2.03Km.→옥양봉 2Km. 을 가르키고 (09:34)등로는 자갈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갈림길이정목과 구조목(02-02) 오른쪽(능선길).좌측길(계곡길)(09:38)

이나오고 구조목02-03 (09:41)쉼터및갈림길이정목이 ←등산로.관음전,산신각→을알려준다.(10:00)

여기서부터는 오름길이 가팔라진다.

8분여 올라가니 갈림길이정목이←옥양봉 420m.관음전 50m→임를 알려준다.

점점등로는 된비알로 호흡를 빠르게한다.

산유화는 뒤에쳐저올라오고 쉼터에서 잠시기다리니 다른산악회분들과함께올라온다.

수원거북이산악회회원분들이라고 수인사하고 함께오른다.

앞ㅍ서진행하여오르니 한분이 앞서가고있다.

추월하여 오르니 전망바위가나오고 오늘가야할 가야봉을 바라보고 다시오르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온다.정상바로아래전망바위에서 상가리및 덕산읍내전경을 조망하고

오늘가야할 능선을 바라보고 올라서니 옥양봉정상이다.(621.4m)(10:40)

정상에는 먼저올라오신 산님들이 담소를 나누시며 휴식을 취하고계시고 등산로안내판과 이정목이 ←석문봉.수정봉→을 알려주고 구조목 ( 가야 01-01.N36º43"43"E126º36"36")이 좌표를 알려준다.(분은 기호를 찿는것을몰라서초로)

잠시의자에앉아간식먹으며 휴식한다.

수원에서 오신분들과 담소를나누고있는데 후미팀들이 올라오니 먼저출발하신다.

우리는 좀더쉬고출발하여 바로봉우리에오르니 로프를 설치하여 위험을 예방한다.

좀더 진행하니 갈림길이정목이 ←주차장.↑석문봉.↓옥양봉.구조목(가야01-03.N36º43"43".E126º36"36").(11:09)

우리는 직진하여 진행소나무군락지를 지난다.

오르막길에 로프를 설치하여 위험을 방지한다. 봉우링는 돌탑이있고.

지나온 능선을 조망하고  다시내려와등로에 접어드니 뒤에오던 산유화가 앞서가고있다.

합류하여 좀더 진행하니 송신시설이나오고 두번째 갈림길이정목이←주차장3.2Km.↑가야봉2.05Km.↓옥양봉1.57Km.지남을알리고,구조목(가야 .01-06,N36º43"07".E 126º36"08")(11:35) 여기서좀더 비탈길을 오르니 석문봉(653m) (11:38) 예산악회에서 세운정상석이 반겨준다. 첫번째돌탑우측으로 일락사을안내하고,구조목 (가야 01-07, N 36º43"05",E 126º36"08") 두번째 돌탑은 해미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기념탑이다.(2001.9.9)

인증샷몇장찍고 가야봉을 바라보며진행하니 건너편봉우리를 향해진행하니 로프를 설치하여 미끄럼을방지하고 오름길에도 설치해놓아 위험예방에 도움을준다.

세번째갈림길이정목(11:58) 좌측주차장3.2Km.가야봉1.65Km남음과뒤로는 석문봉0.4Km.지남을 알려준다.

구조목(가야01-08,N36º43"54".E 126º36"16") 좀더진행하니 기암이반겨주고 .조금더진행하니 괴목소나무들도 반겨주고 소나무사이에 편편한장소에서 점심식사를하고 출발한다.

전망바위에서 인증샷(12:46)하고 진행하니 네번째갈림길이정목이←주차장3.12Km.↑가야봉0.42Km.↓석문봉1.23Km.지남을알려주고 구조목은좌표 (가야01-09,N 36º42"31".E 126º36"24")를 알려준다.(12:53)

10여분진행하여오르니 가야봉정상엔 TV 중계소가자리하고있고 정상은 나무목이대신하고있다.

남자분이 혼자바위에앉아 점심을 들고있다.근처에서오신듯,여성분이시시고계시고있고 수인사하고, 여성분은 홍성에서 오셨다고하시고 남자분이 길을 안내하신다며

앞장서서 함께하산한다.

중계소울타리를끼고 하산하여 내려오니 갈림길이정목이 해발612m.←헬기장850m.↓상가리주차장3.88Km.→가야봉0.15Km.을알려준다.우리는 헬기장방향으로진행하니(13:15) 5분여지나니 너덜길이나오고 17분여지나니 도로가나오고.이정목이 헬기장0.1Km.가야봉1Km.지남을 알려주고 도로따라내려오니,장승과헬기장이나오고 건너편봉우리가 원효봉이고 헬기장이정목이 ↑남연군묘 3.2Km.알려준다. 숲속길로 접어들어 진행하니 구조목(가야07-03, N 36º42"22".E 126º36"55") (14:05) 가 나오고

10여분 지나니 이정목 (해발 292m)↑가야봉1.15m.←헬기장2.88Km.→상가리주차장0.83Km.알려준다.

내려오는중에 여자한분이 나뭇잎을 채취하고있다.

무엇을 따냐고물어보니 다래잎을 채취한다고하여 우리도함께채취한다.

한끼분량되니 가자고하여 하산을다시진행한다.얼마안가니 계곡물소리가 들린다.

탁족을한다.조금있으니 인기척이난다. 보니수원에서오신분들이 내려오신모양이다.

모두들 탁족할준비을한다.우리는 탁족을 마치고 출발한다.

 

산유화는 쑥뜯느라 정신없고 좀더내려오니 계곡에서 탁족하고나신 선두두분을 만나다.산유화는 어찌하고 혼자내려오냐한다. 웃으며 쑥뜯느라 안오고있다하니

우리도 쑥뜯을까하며 함께한다.

남연군묘에들려 사진남기고 ,남은들상여도 관람하고 도로를따라 내려온다.

아침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갔는데 하산은 좌측도로로 내려온다.

수원서오신분과 산유화는 쑥뜯느라 갈생각을안한다.이젠그만가자고하여 내려온다.

오늘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를회수하여 상경한다.

오늘일정으로 가야산산행기를 대신한다.

                        2010.05.08.

                                      아름다운산

 

 *남연군묘 *

조선조 말 종싱중흥에 살잡혀 있던 흥선군 이하응 (李夏應)은 경기도 연천땅 남송정에 있는 부친 이구(李球)의 묘소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은자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지사(地師) 정만인에게 간청해 얻게 된곳이 바로 이곳이다.

헌종 10년,부친 남연군(南延君)이 작고한 지 9년째 되는 해로 흥선군 나이 25세였다.

당시 흥선군이 이곳에 당도해보니1400년 고찰 가야사(伽倻寺)가 있었다.

 

정만인이 지정한 명당은2대가 왕위에 오를수 있는 자리로 가야사 마당에 있었던 5층석탑인 금탑 (金塔)자리를 점찍었다.

흥선군은 이 자리에 묘를 쓰자니 금탑을 지키듯이 자리한 가야사 보웅전 (普雄殿)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당시 이 일대 땅주인이자 고을 최고부자인 윤석문(尹石門)집안 종손에게

간청해 일단금탑에서 북서쪽 약 400m떨어진 구광(購壙)터라는 곳에다 부친묘소를 옮겨 쓰도롥 허락을 받아낸다.

당시 흥선군은 정2품의 종친 귀공자에다.궁중살림을 총관장하는 도제조 (都提調)였으니 윤씨 집안에서 청을 거부 할수도 없었다.

구광터로 아버지 묘소를 옮겨오는 1차 목표를 달성한 흥선군은 이듬해 충청도 관찰사에게 압력을 넣어 덕산현감에게 명령케 하여 가야사에 승려가 살지못하게 하고 폐사로 만들어버린다. 그 다음해 흥선군은 보웅전에 불을 지르고,

또 한해가 지난 봄에 금탑마저 허물고는 구광터의 부친묘를 금탑자리로 옮긴다.

 

묘를 옮긴 지 7년후 차남 명복(命福)을 낳았는데. 철종의 후사가 없어 가까운 종손인 명복이 12세 나이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고종(高宗)이다.

1866년 독일 상인오페르트가 남연군묘를 도굴했는데. 관에는  손을못댄 채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대원군은 쇄국과 천주교를 탄압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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